검은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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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솥
  • 탄탄
  • 승인 2023.08.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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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어릴적 외갓집에 가면 수십년 묵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그을음 검정 가마솥 있었네
바삭바삭 구수한 누룽지를 긁고 숭늉을 끓여 
끼니를 이어준 정감 어린 솥단지에 감자나 옥수수를 삶기도 했던
가끔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솥생각이 나더니
우연하게 꼭 빼 닮은 솥이 어느 날 내 소유가 되었다
녹이 난 솥 몇십년쯤은 찌들어 묵혀두었던 찌든 녹을 몇날 며칠동안 닦고 기름칠하여 반들반들 윤기나게 단장을 해놓고는 수년째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구순을 넘겨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절절히 나기도한다
새벽녘 저물녘 검은 솥에 하얀 영혼의 밥을 안치고
밥상을 차리시던 유년의 한때가 물밀듯이 그리워 오는 것이다
식구들을 위한 쌀밥을 지을 때
그 솥에서는 김이 솟아나고
부엌에는 신령한 기운이 가득차고
어떤 신성한 종교의식 못지 않은 내 속안에 검은 솥이 선명하건만,
그 솥 몇 날 애정을 주지 않았더니
어느덧 천덕꾸러기가 되어
비를 맞고 녹이나고 있더라 
가끔은 뽕나무 잎도 덕어 차를 만들기에도 안성맞춤이고
내 생의 에너지를 오래도록 함께 하려는데, 그저 바라만 보아도 푸근하여 오래오래 내 손에서 광을 내주고 싶었지만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골이 난듯이 녹을 쳐바르고 시위를 하는 듯 하여라
내 안에 숯처럼 검게 물든 검정 솥이여 
내 친히 오래도록 널 애장 하고프네

탄탄(불교 중앙 박물관장, 적조사 주지)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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