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이씨(河濱李氏)의 시조는 이거(李琚)이다.
고려 명종조 예부상서를 역임하였으며, 추증된 시호는 문정(文貞)이고 나라에 공을 세워 하빈군(河濱君)으로 봉해졌다고 한다. 본관은 하빈(河濱)이며, 그 장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이다.
시조의 손자는 이경(李瓊)이며 그의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그는 좌정언에 제수되었고, 효행이 높아서 화주목사에 제수되었다. 그 후 자연의 산림 속에서 학문에 정진하다가 고려가 끝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충절정신으로 서기 1392년에 두문동에 들어갔으며,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이 되었다고 한다.
근세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짓밟음에 민족의사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만주에 항일광복을 위한 대전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9년 11월 3일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초대국무총리를 역임하였으며, 조국광복을 위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이종암(李鍾岩,1896~1927)은 의열단부단장로서 일제에 맞서 조국독립을 위해 공을 세운 민족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