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온 나주김씨의 원 뿌리는 신라 김씨 대보공(大甫公) 김알지부터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계자(季子, 막내아들) 황(湟)왕자의 가계로 이어진다.
경순왕은 신라가 더 이상 나라를 존속할 수 없게 되자 가없는 경천순민(敬天順民)의 대의를 따라 천년사직을 고려에 손국(遜國)하였다. 이에 경순왕과 정비 죽방부인 박씨 사이에 태어난 황 왕자는 태자 일(鎰, 마의태자)과 함께 손국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가납되지 않자 통곡하며 충절을 지켜, 고려에서 제수한 평장사를 받지 않고 처자를 속세에 두고 부왕의 영정을 모시고 가야산 법수사(法水寺)로 입산, 범공(梵空) 스님이 되어 해인사를 왕래 주석(駐錫)하다 종신하니 조정에서는 의영공(懿英公)의 시호를 내리고 개성 오룡산에 장례하였다.
국보 306호인 삼국유사 김부대왕(경순왕) 조(條)와 법수사지(法水寺址) 3층석탑(보물1656호) 안내판에는 “경순왕의 계자 김황(金湟, 나주김씨의 비조)이 승려가 되어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으로 일생을 마쳤다”고 나주김씨의 근원을 밝히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다. 고려는 황 왕자의 장남 운발(雲發)을 예우하며 문하시중 나주군(羅州君)으로 책봉하니 후손들은 관향(貫鄕)을 나주로 하게 되었다.
나주김씨는 고려, 조선을 이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무현관과 동량지재는 물론 보국안민한 충신열사와 효자를 많이 배출한 삼한(三韓)의 올곧은 명문가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