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류씨는 백제, 신라, 고려를 거쳐 오면서 명현들의 행적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말 전주에 세거한 류습(柳濕)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5남 1녀를 두었는데, 판전교시사공, 직제학공, 이조판서공, 대사성공, 호조판서공, 5형제와 사위 대제학 심효생이 모두 등과하여 류습은 완산백(完山伯)에 아내는 삼한국대부인
(三韓國大夫人)에 봉작되었다.
3세 영흥공의 묘는 사대부의 묘로서 종릉으로 불리고, 4세 회헌공은 세종조의 명신으로 집현전 삼선생이라 칭송받았다. 5세 유일재공은 세조대의 생절신으로서 혜학루(惠學樓)를 지어 후학을 양성해 절의 있는 선비로 추앙받고 있으며, 6세 문목공은 동지 성균관사로 성리학을 발전시키고 도학정치의 비조로 숭앙받고 있다. 임란공신 조생은 사대(四代)가 봉군되었고, 낙봉공은 대사간으로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9세 춘호공은 영의정으로 임진 국란 극복으로 나라를 바로 세웠으며, 손자 전창군은 부마로 봉작되어 오대(五代) 봉군 가문이 되었다.
9세 기봉공, 묵계공, 별암공, 정암공은 임란 때 의병장으로 의와 충을 실천하여 참 선비의 표본이 되었으며, 9세 월봉공, 13세 지곡공, 18세 정재공 등은 문명을 떨친 학자로 빛났다. 그 외에도 수많은 애국지사와 효자 열녀 등 명현달사를 배출한 명문가로 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전주류씨 종중에서는 삼한국대부인의 교육 유지를 빛내기 위하여 전주시에 종립 유일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여성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